김영신 medicalkorea1@daum.net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10명 중 5명이 병원 내 부조리한 관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의료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 부당한 업무 외 지시 64%…가짜 당직표 39%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이 지난 9월 11일부터 26일까지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1차 근로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46.6%인 472명이 병원 내 부조리한 관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은 사례는 부당한 업무 외 지시로 64%에 달했다.
이어 가짜 당직표 38.7%, 대학원 의무 등록 31.3%, 의국비 강제 징수 19.9%, 대리 당직 16.4%, 논문 대필·강제 저자 등재 14.1%, 대리 수술 6.8% 순이었다.
특히 대리 수술은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임에도 일부 수련병원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도 55명의 응답자가 주관식으로 다양한 부조리 사례를 제시했다.
임산부 부당 대우와 성희롱 등 여성 처우 문제, 전공의 내부 위계 문화, 의국 내 폭언·폭행·괴롭힘, 학회·회식 등 행사 강제 참석, 강제 펠로우 서약, 당직비 부정 등이 포함됐다.
◆ 근로계약서 미작성 11%…법의 사각지대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실태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33.6%가 근로계약서 사본을 교부받지 못했다고 답했으며, 이 중 10.7%는 아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는 근로기준법 제17조에 명시된 사용자의 의무사항으로,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는 응답자 3명 중 1명이 법적 보호가 미흡한 상태로 근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이 채용기간 이후 이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근로계약을 미리 알리지 않고,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채 업무를 시작하게 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통보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라고 지적했다.
◆ 안전보장 51% 미흡…폭력 대응체계 69% 없어
방사선·감염·위험 시술 시 안전장비나 교육, 보호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51%에 달했다.
전공의들이 일상적으로 방사선과 고위험 감염·시술을 마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폭언·폭행·성희롱 문제에 대한 예방 교육이나 공식 대응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응답도 68.7%로 나타났다.
전공의들이 스승과 제자 관계로 얽혀 있는 의국의 특성상 위계적 질서와 이로 인한 폭언·폭행·성희롱 등에 노출되기 쉬움에도 병원 내 보호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 “기본적인 노동법도 안 지켜져”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주 기본적인 노동법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라며 “전공의법의 일부 특례조항을 제외하고는 일반 노동법이 그대로 적용되는데도 수련병원에서는 노동법 적용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가 구체적인 실태를 확인하고 전공의법과 관계 등을 명확히 정리하여 준수해야 할 기본적인 노동기준을 안내하는 가이드라인을 수련병원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현장 전공의들이 법정 근무시간과 근로기준법을 위반당하고 있는데도 이를 자행하는 병원은 아무런 감시도,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라며 “실효성 있는 현장 감독과 신고 절차, 정책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벌칙 조항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