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가 6일(현지시간)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말초 면역 관용에 관한 획기적 발견을 이룬 메리 브런코우(미국 시스템생물학연구소), 프레드 램스델(미국 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 사카구치 시몬(일본 오사카대학교) 3인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 면역계의 ‘평화유지군’ 조절 T세포 규명
노벨위원회는 수상 이유로 “면역계가 우리 몸을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말초 면역 관용에 관한 획기적 발견”을 꼽았다.
올레 켐페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들의 발견은 면역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왜 우리 모두가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에 걸리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매일 수천 가지 다른 미생물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그런데 T세포 수용체는 외부 항원뿐 아니라 자신에서 유래하는 수용체도 만들어 자기를 인식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자가인식 T세포가 제거되지 않으면 류마티스 관절염, 루프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한다.
기존에는 흉선에서 자가인식 T세포를 제거하는 중추 관용만이 알려져 있었다.
▲ 사카구치, 1995년 CD25 발현 조절 T세포 발견
사카구치는 1995년 첫 번째 핵심 발견을 했다.
당시 많은 연구자가 면역 관용이 오직 흉선에서 잠재적으로 해로운 면역세포가 제거되는 중추 관용을 통해서만 발생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제갈동욱 교수는 “사카구치는 자가인식 T세포를 조절하는 새로운 기전을 연구했다”며 “자가인식 T세포가 CD25를 발현하며, 이러한 CD25 T세포가 조절 T세포로서 존재함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사카구치는 이 CD25 T세포를 실험쥐에 투여하면 자가면역질환을 억제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 브런코우·램스델, FOXP3 유전자 돌연변이 규명
브런코우와 램스델은 2001년 두 번째 핵심 발견을 했다.
이들은 특정 생쥐 품종이 자가면역질환에 특히 취약한 이유를 유전자 수준에서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연구팀은 X염색체에서 Foxp3 유전자를 발견했고, 해당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생쥐에서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인간의 동일 유전자 돌연변이가 IPEX라는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을 IPEX 증후군 환자에서 실증했다.
이후 2년 뒤 사카구치는 이러한 발견들을 연결했다.
그는 Foxp3 유전자가 자신이 1995년에 발견한 CD25 T세포의 성숙과 발달을 관장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론적으로 FOXP3 유전자가 CD25 T세포의 성숙에 중요하며, CD25 T세포(조절 T세포, Treg)는 자체 단백을 인식하는 T세포를 억제함이 밝혀졌다.
◆ 기초면역학이 임상의학 패러다임 전환시킨 전형적 사례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주하 교수는 “조절 T세포와 FOXP3의 발견은 기초면역학이 임상의학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전환시키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사카구치의 1995년 발견은 순수 기초연구로 시작됐지만, 브런코우와 램스델이 분자생물학적 기법으로 FOXP3 유전자를 클로닝하고 IPEX 증후군의 분자병리를 규명하면서 ‘연구실에서 병상으로(Bench to Bedside)’의 전형적 경로를 보여줬다.
이 교수는 “단일 전사인자인 FOXP3가 조절 T세포의 발달과 기능을 총괄 조절한다는 분자생물학적 발견은 자가면역질환 발병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기전임을 보여주며, 기초의학의 힘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희귀질환 연구가 일반 질환 이해의 돌파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IPEX 증후군은 100만 명당 1명 미만의 극희귀질환이지만, 이 환자들에 대한 분자유전학적 연구가 류마티스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1형 당뇨병 같은 흔한 자가면역질환의 병인을 설명하는 핵심 열쇠를 제공했다.
이는 기초의학 연구에서 모델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단순 질병 치료를 넘어 면역학의 기본 원리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과학적 가치가 크다.
◆ 양방향 치료 전략 수립 가능
이번 발견의 진가는 양방향 중개연구를 가능하게 했다는 데 있다.
제갈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자가조절 T세포가 존재하거나 증가해서 자기를 인식하는 T세포를 억제해야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암은 자신의 세포가 무한증식하는 성질이 있어, 암 치료에 있어서는 자가조절 T세포가 감소하거나 없어야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다.
자가면역질환에서는 FOXP3 양성 조절 T세포를 증강하는 방향으로, 암에서는 종양 미세환경 내 조절 T세포를 억제하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갈 교수는 “자가조절 T세포가 발현하는 T세포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정상 T세포에 발현하게 한다면 난치병으로 알려진 루프스, 1형 당뇨병,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T세포를 환자에게서 채취해 증폭시킨 후, 인위적으로 수용체를 발현하게 하는 CAR-Treg 세포를 이용한 임상시험이 현재 국내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 자가면역질환 개념 재정의하며 새 치료 지평
이 교수는 “조절 T세포와 FOXP3의 발견은 자가면역질환을 ‘면역계의 오작동’에서 ‘평화유지군의 부족 또는 기능장애’로 재정의했다”며 “IPEX 증후군 같은 희귀질환 연구를 통해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의 공통 기전을 밝혀낸 것은 기초 과학의 힘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과거에는 면역억제제로 전체 면역계를 억눌렀지만, 이제는 조절 T세포를 증강하거나 이식해 질병의 근본 원인을 표적 치료할 수 있게 됐다”며, “보다 정교하고 부작용이 적은 방향으로 다양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한편 수상자들의 발견은 말초 관용 연구 분야를 개척했으며, 암과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의학적 치료법 개발을 촉진했다.
이는 더 성공적인 장기 이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치료법 중 여러 가지가 현재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상금 1,1000만 크로나(약 14억원)는 3명의 수상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된다.
브런코우는 1961년생으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램스델은 1960년생으로 1987년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카구치는 1951년생으로 1976년 교토대학교에서 의학박사, 198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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