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내과의사회(회장 이정용)가 지난 12일 롯데호텔에서 제18회 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부와 국회에 5대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전면적인 궤도 수정을 촉구했다.
또한 중동발 원료수급 불안으로 촉발된 의료소모품 수급 대란에 대해서도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검체검사 위·수탁 개편 강행…“1조 8천억 손실에 4천억 보상은 기만”
내과의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현안은 복지부가 추진 중인 ‘검체검사 위·수탁 보상체계 개편안’이다.
이는 위탁기관과 수탁기관 간 검사비용을 분리 청구(EDI)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다.
내과의사회는 환자의 진료비·검사비 이중 납부 혼란, 민감한 개인 질병 정보의 유출 위험, 천문학적 청구 시스템 개발 비용, 의료행위 오류 발생 시 책임 소재 불분명 등을 지적하며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이정용 회장은 “개원가에 약 1조 8,000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히고 고작 4,000억 원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은 최악을 차악으로 바꾸는 것일 뿐 실질적 보상이 될 수 없다”며 “이는 내과의사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자 붕괴의 시작점”이라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정부가 2023년 연구용역 결과를 무시하고 협의체 구성 약속마저 이행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과 ‘대승적 차원’이라며 정부 안에 동조한 대한의사협회를 향해서도 정당성이 부재하다며 날을 세웠다.
◆인두제 노린 주치의제·필수약 공급난 부르는 약가 인하 규탄
정부의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한국형 주치의제)’ 도입 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표면적으로는 초고령 사회 대비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1인 의원 중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장기적으로 인두제를 도입해 의료비를 절감하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것이다.
환자 등록과 포괄 평가, 정기 점검 등 방대한 행정 업무가 전가돼 의료 서비스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야간 및 휴일 진료 필수화 등 인센티브 구조가 소규모 의원에게는 사실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현장 한계를 드러낸 만성질환관리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질적 협의가 선행돼야 함에도 특정 진료과가 현장 의견을 외면하고 정부에 성급히 동조한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2026년 시행을 앞둔 약가 인하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 건강을 담보로 한 무리한 재정 실험으로 규정했다.
건보 재정 안정화라는 명분에는 동의하지만, 무리한 약가 인하가 제약사의 생산 위축과 필수 의약품 공급 불안으로 이어지는 연쇄 작용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항생제나 심혈관계 약물 등 내과 필수 약품의 공급난이 이미 가시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한 ‘혁신성 가산’과 ‘수급안정 가산’ 등의 보완책은 기준이 경직돼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대체조제 사후 통보·성분명 처방 의무화…“처방권 형해화”
내과의사회는 지난 2월부터 시행된 대체조제 사후 통보제도와 국회 상정을 앞둔 성분명 처방 의무화 입법에 대해서도 전면 중단을 요구했다.
대체조제 사후 통보제도는 약사가 의사의 사전 동의 없이 대체조제를 한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을 통해 사후에 통보하는 구조로, 동일 성분 의약품이라도 제형이나 생체이용률, 부형제 차이로 임상 효과와 부작용이 달라질 수 있어 다약제를 복용하는 고령자·만성질환자·소아에게 치료 실패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사전 동의 없는 처방 변경에서 발생한 임상적·법적 책임이 고스란히 의사에게 귀속되는 점은 의약분업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 역시 의사의 책임 있는 의료행위를 법으로 제한하는 졸속 입법이라며, 치료 책임과 의약품 선택 권한이 분리되면 일관된 진료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분명 처방을 강제할 경우 현장 혼란만 극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소모품 수급 대란…“사재기 아닌 글로벌 공급망 붕괴”
내과의사회는 일회용 주사기, 수액세트, 탈지면, 거즈 등 필수 의료 소모품의 수급 불안 사태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내과의사회에 따르면 평시 2,000원~3,000원 수준이었던 탈지면 한 팩 가격이 최근 8,000원 수준까지 상승했으며, 주사기와 수액세트 등도 대부분 품절 상태로 2~3배 값을 지불해도 물품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회장은 “개인적으로 우리 병원도 주사기 재고가 간신히 1주일 버틸 정도 남아있다. 이마저 소진되면 필요한 환자들에게 주사 처방을 하려 해도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크다. 만약 주사기 재고가 소진되면 이후에는 주사 처방과 관련된 부분은 진행할 수 없다”라며,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품절 대란 때처럼 일부 가수요가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 현장은 사재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내과의사회는 지난 4월 9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태의 원인은 의료기관의 사재기가 아닌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인한 원유 공급 차질과 나프타 공급 불안정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라고 밝히기도 했다.

◆내과의사회가 제안하는 4가지 핵심 조치
내과의사회는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에 4가지 핵심 조치를 제안했다.
▲필수 의료 소모품 국가 비축 제도 즉각 도입 ▲의료용 소모품 생산 기업 긴급 지원 및 생산 확대 유도 ▲수입 절차 간소화 및 관세·물류 지원 ▲의료기관 대상 부당 조사·규제 중단 및 현장 의견 반영 등이다.
내과의사회는 “국내 생산 기반 확충이나 비축 시스템 구축 없는 단순 모니터링은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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