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KPBM)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국형 환자혈액관리(PBM) 모델의 제도화를 강조했다.
학회는 지난 24일 서울 마곡동에서 개최된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PBM의 의료기관 평가 항목 반영과 수혈적정성 평가 고도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다학제 협력으로 10년간 PBM 기반 구축
환자 혈액 관리(PBM)는 수혈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자 자신의 혈액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포괄적인 환자 중심 접근법이다.
환자의 철분 상태, 혈액량, 지혈 상태 등을 평가하고 적정량의 수혈을 실시하는 등 치료 과정 전반에 걸친 혈액 관련 의사결정을 포괄한다.
김경환 회장(서울대병원)은 “PBM은 단순히 수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혈액을 보호하고 회복력을 높이는 치료”라며 “의료진 간 협업을 통해 PBM 원칙이 모든 진료 현장에 적용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회는 2016년 대한수혈학회와 함께 수혈 가이드라인에 PBM 내용을 반영했고, 2017년에는 서울에서 국제 환자 혈액 관리 심포지엄을 개최해 국내 PBM 연구 수준을 세계에 알렸다.
특히 2022년 혈액관리법 시행규칙 개정 이후에는 대한수혈학회와 함께 의료기관 내 수혈 관리 인력 교육을 담당하며 PBM의 제도적 기반 마련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수혈적정성 평가 고도화 필요성 제기
학회는 현행 수혈적정성 평가와 수혈관리실 운영이 1차원적 안전관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환 회장은 “수혈적정성 평가를 더 고도화하고 강화해야 한다”며 “현재 평가는 혈액을 안전하게 관리했느냐에 대한 평가로 일차원적인 평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 내 수혈관리실에서도 안전한 수혈관리로 1차적인 차원의 관리에 머물러 있다”며 “적정성 평가와 수혈관리실 모두 고도화된 수혈 관리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재 고문(초대 회장)은 “심평원의 수혈적정성 평가는 현재 슬관절 치환술 등 일부 수술에 국한돼 있다”며 “평가를 더 강화하고 확대해 병원 인증평가 항목인 ‘수혈관리실’의 역할을 혈액 안전 관리에서 ‘적정 수혈 관리’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시장 급성장 vs 국내 수혈률 여전히 높아
세계적으로 PBM은 환자 안전, 의료비 절감, 혈액 자원 효율화의 3대 효과를 입증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4년 150억 달러에서 2032년 24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며,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각국의 PBM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다르다.
이정재 고문은 “2023년 논문에 따르면 심장 수술 시 우리나라 수혈률은 75~95%로, 미국(약 30%)의 3배에 달한다”며 “이는 정형외과 등 다른 수술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태엽 고문(전 회장)은 “2011년 대비 2015년 인구 천 명당 적혈구 사용량이 호주, 미국 등은 감소했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증가했다”고 밝혔다.
높은 수혈률의 원인으로는 수혈 기준치에 대한 의료진의 낮은 인식,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저렴한 혈액 가격(환자 본인부담 약 2만 원대), 그리고 PBM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 부족 등이 지적됐다.
백정흠 홍보대외협력이사는 “PBM은 인공 생성이 어려운 혈액을 아껴 쓴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정 수혈’을 통해 환자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평가 항목 반영·수가 신설 촉구
학회는 PBM 확산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경환 회장은 “PBM이 병원 평가 기준에 반영돼야 각 의료기관이 환자 혈액 관리 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며 “정부 및 유관기관과 협력해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동일한 위험도의 수술에 대해 병원별 수혈 사용량을 비교하는 등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의료진 스스로 PBM 실천 정도를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다”며 국가 주도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재환 부회장은 “PBM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의료 보험 수가와 직결하는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정책 입안자들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민들도 PBM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수가 신설 등 병원 참여 유인책 마련 시급
수가 신설 등 병원 참여 유인책 마련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김태엽 고문은 “PBM을 잘 실천해 혈액 사용을 줄이면 역설적으로 병원 매출은 감소한다”며 “환자에게 좋은 일이지만 병원에는 손해인 구조를 개선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환 회장도 “PBM 시스템 구축에는 인력과 비용이 드는데, 관련 수가나 보상이 전혀 없다면 병원이 자발적으로 투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진 인식 개선과 대국민 홍보 병행 추진
학회는 젊은 의료진 교육 확대와 대국민 홍보의 중요성도 제시했다.
의과대학과 전공의 교육 과정에 PBM을 필수 진료 역량으로 포함하고, 환자 스스로 자신의 혈액을 관리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 활동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이사(고려대안암병원 중환자외상외과)는 “모든 의사는 자신이 적절하게 수혈한다고 생각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부적절한 경우가 드러난다”며 “학회 리더들이 실제 병원을 변화시키고 동료 의사들의 인식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병원장의 리더십 아래 무수혈센터 설립과 혈액 관리 지침서 제정이 이뤄진 사례를 언급하며 “처음에는 PBM에 관심이 없었지만, 매달 발표되는 부적절한 수혈 통계를 보며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 노력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학회 리더들이 학회 안에서만 이야기해서는 의미가 없다. 각자 병원을 움직이고, 동료들의 인식을 개선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PBM 모델, 국제 표준으로 도약 목표
학회는 정책·교육·연구의 세 축을 기반으로 한국형 PBM 모델을 국제 표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김경환 회장은 “전국적으로 PBM을 확산하려면 WHO 가이드라인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각 병원에 전파해야 하고, 병원에서는 이러한 환자 안전에 대한 노력에 대한 이득이 있어야 운영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정책적인 부분들이 뒷받침돼야 진정한 국민을 위한 방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PBM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영역으로, 의료의 질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학회는 앞으로도 교육, 연구, 정책을 통해 한국형 PBM의 글로벌화를 주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창립 10주년을 맞은 학회는 지난 10월 23~24일 ‘Annual Symposium of The Korean Society for Patient Blood Management with Global PBM Lovers’를 개최해 글로벌 PBM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학회는 향후 ▲PBM의 의료기관 평가 항목 반영 ▲의과대학 및 전공의 교육 강화 ▲대국민 홍보 확대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며, 한국형 PBM 모델의 정착과 확산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는 2014년 5월 환자혈액관리 연구회로 출범해 2016년 학회로 승격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외과, 내과, 진단검사의학과, 흉부외과 등 다양한 진료과 전문가가 참여한 국내 유일의 다학제 PBM 학회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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