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년보다 더 더운 올 여름, 에어컨 바람이 있는 곳만 찾게 되는 이때에 특히 더 힘든 환경에 있는 분들이 있다. 바람 한줄기 통하지 않는 다닥다닥 붙은 쪽방에서 사우나 같은 더위와 씨름하며 지내는 분들. 극한의 환경에서 버티며 지내다보면 우울감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 중년 남성이 실려와 응급실 침상에 뉘여 졌다. 그는 부모도 가족도 없는 혼자의 몸으로 지내다 가지고 있던 약 40여알을 한꺼번에 집어 삼킨 채 실려 왔다. 더 이상의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택한 선택이었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로부터 일찍 발견되어 의식이 명료한 상태로 온 이 남성의 상태는 오랜 노숙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저에게는 가족이 없어요, 돈도 물론 없고요. 그냥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집도 없어요.”
세상에 대한 절망과 회의로 자살시도를 선택한 이 남성은 어느새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약물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응급 처치인 위장관 세척과 약물 흡착용 활성탄 투여를 마치고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그에게 의료진은 입원 설명과 함께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의 사후관리 서비스, 그리고 지역사회 서비스 연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를 돕기 위해 필요한 연락처와 명확한 거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사람인 듯 보였다. 도움을 기대하는 그의 눈빛은 확고했고, 우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사회복지사업팀을 통해 응급치료 및 입원치료 이후 노숙인 시설 담당자로 인계된다는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를 통한 지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지원을 진행하기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환자의 삶에 대한 의지를 지켜주기 위한 의료진의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퇴원 후 기관을 통해 전해들은 그의 소식은 노숙인 시설에서 퇴소하고 지방의 한 정신과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2주 쯤 지났을까? 전화기 너머로 낮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번호 맞는 거죠?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도움 요청하려고 이 번호 기억하고 있었어요.”
응급실에서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그동안 치료과정을 통해 안정된 모습을 찾은 듯한 그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자신이 찾을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며 연신 감사해 했다.
그는 이후로도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는데, 불현 듯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슬픈 과거, 어머니의 죽음 등이 생각나 전화했다며 우울감에 매몰되지 않고 위기를 잘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그는 이전의 고독감과 무기력감에 허우적대던 모습이 아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래서 그의 희망 전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절망감을 극복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처럼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경험이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그 전환점을 만들어 낸 것이 환자 자신임과 동시에 응급실이 되었다.
자살, 중독, 행려 등 세상에서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이 필요한 이들이 회복이라는 희망의 열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문을 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가진 채 오늘도 응급실 앞을 서성이고 있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따뜻한 동행이 그들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