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병에만 40일이 걸린 수나라 100만 대군.
동아시아 최강대국 수나라와 고구려의 대격전이 지금 시작된다.
■ 슈퍼 차이나의 등장! 고구려를 겨누다.
589년, 수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강자로 급부상한다. 형식적 조공-책봉관계에서 나아가 수 중심의 천하관을 세우려는 수나라의 요구에 고구려는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선다. 607년,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백만 대군의 침공! 수양제는 도대체 왜, 고구려 침공에 이토록 많은 군사를 동원한 것일까?
■ 예상치 못한 전쟁의 변수, 요동성 전투
수도 평양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요동성은 고구려에게는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될 주요 거점이었다. 고구려군은 수에 맞서 ‘기만전술’로 대항하며, 요동성을 사수한다. 석 달이 넘게 계속되는 교전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요동성! 백만 대군을 상대로 요동성을 사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30만 5천 명의 출정병, 단 2,700명만이 살아남다.
을지문덕 장군의 항복의사를 접한 수군. 결국 철군을 결행한다. 그런데, 철군하는 수군의 뒤를 밟는 군사들의 움직임. 바로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이었다! 고구려군은 철군하는 수군의 후미를 공격해, 살수에서 수군을 궤멸시킨다. 이날 살아남은 수군은 겨우 2,700명. 오늘날 <살수대첩>으로 불리는 이날의 전투!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살수대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살수대첩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본다.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나라 백만 대군의 침공, 이에 맞서 고구려가 이뤄낸 쾌거! 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밤 9시 40분, 7세기 동아시아의 판도를 뒤바꾼 격전의 그날로 돌아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