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70주년 기념 제18회 KBS 해외 동포상의 주인공은 과학 기술 부문에 에모리 의대의 신동문 교수(미국), 문화 예술 부문 화가 노은님(독일), 사회 봉사 부문 왕청일 대표(일본), 인문 사회 부문 김 게르만 교수(카자흐스탄),특별상에 의사 이소심씨(중국)가 선정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어떤 활약을 했으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민족 의식을 고취 시키기 위해 과연 어떤 일을 했을까?
<제1부 – 대한민국을 빛내다>
그림의 시인 - 재독화가, 노은님
하얀 눈이 쌓이는 곳이 있으면, 그곳은 그녀의 도화지가 된다.
손과 발로 쓱싹.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눈밭에는 그녀만의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노은님은 한국인 최초로 독일 함부르크시의 알토나 요한니스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에 참여했고, 한국인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20년동안 함부르크 국립 조형 대학의 회화 교수로 재직한 재독화가다.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화풍으로 독일 화단에서‘그림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은님.
노은님은 " 화가는 어부와 비슷한 것 같아요. 바다에 나가서 어느 날은 하나도 못잡고 어느 날은 큰 것도 잡을 수 있고, 저도 아침이면 화실에 와서 무조건 한번 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가하고 어부하고는 인생이 비슷한 거 같아요."라고 밝혔다.
그녀는 1970년 파독 간호사로 처음 독일에 왔다.
우연히 그녀의 그림을 본 간호장의 주선으로 병원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그녀는 그 이후, 삶이 바뀌었다.
스물 일곱의 나이에 함부르크 미대에 진학,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는 동화적 감성을 물씬 풍기는 그녀만의 화풍으로 독일 화단이 주목하는 화가가 됐다.
지금도 그녀의 전시회가 열리면,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다 팔릴 정도다.
두경부암 1인자 - 신동문 에모리 의대 교수
오늘도 암센터에 가장 먼저 출근한 사람은 신동문 교수다.매일 아침 그는 7시가 되기 전에 연구실에 도착한다.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학생들의 논문을 살펴보고, 의학 저널을 읽는 것이다. 이어지는 논문 심사와 세미나. 그리고 외래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신동문 교수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항상 회의실에서 샌드위치로 떼웁니다. 100% 병원 안에서 점심을 해결하죠"라고 운을 뗐다.
신동문 미국 에모리 의대 교수는 두경부암과 구강암 치료와 연구 분야의 국제적인 임상 의사이자 의과학자다.
그는 30여년 동안 연구를 통해, 두경부암과 대장암의 표적 항암 치료제를 개발했고, 지금은 나노 기술을 이용한 신 항암치료제와 천연물질을 이용한 암 예방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미국 내 최고의 의사에게만 수여하는 Best Doctors in America에 12년 연속 선정되는 등 암 연구 및 예방, 치료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짐 웨그너 에모리 대학 총장은 "신동문 교수는 에모리 대학의 연구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자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의사이기도 하죠"라고 그를 평했다.
<제2부 – 나의 조국, 대한민국>
나는 고려인이다. – 김 게르만 카자흐스탄 국립대 한국학센터장
카자흐스탄의 비밀문서와 고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국립 중앙 문서 보관소는
정부의 허가 없이는 자료 열람이 금지된 곳. 콧대 높은 문서 보관소에서 김 게르만 교수에게 특별 허가를 내줬다.
고려인 관련 연구를 위해 국립 문서 보관소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김 게르만 교수는 연해주 이민 1세대의 자손으로 태어난, 고려인 4세로
<고려인 이주사>, <한인 이민사>등 저서 발간등 탁월한 학술 및 연구 업적을 남겼으며,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에 한국학 센터를 설립했다.
또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 동포로서 고려인 이주사와 역사를 연구하고 한국어 교육 증진에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게르만 교수는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키워야 합니다. 부모님 세대들은 강제 이주를 와서 고생하면서아주 좋은 이미지 만들었어요. 우리는 이것을 자식 세대들에게 넘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한민족의 얼을 지키다. – 왕청일 미꼬시 주식회사 대표
왕청일 대표는 한국학교인 교토 국제 중고등학교가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하고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한국 국제 중고등학교를 준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그가 이사장 재직당시 만든 야구부는 현재 지원자들이 몰릴 정도로 명문으로 성장했다.
왕청일씨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자존심을 갖고, 민족의 정체성을 배우기 위해한국 학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왕청일 대표는 1년에 한번 교토 국립 박문관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귀 무덤이라고 불리는 언덕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가져온 우리 조상들의 귀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16세기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여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했을 때, 그의 무장들은 전공의 표시로 조선 군민의 귀와 코를 벤 후, 소금에 절여 일본에 가지고 왔다.
왕청일 대표는 그분들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주관하고 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문화재로 부활하다 - 이소심 여사
이소심씨는 독립운동가 이달 선생(건국훈장 독립장)의 장녀로, 한중 수교 전 철거 위기에 있던 충칭 임시 정부 청사를 충칭시 문물보호단위로 정식 인정되는데 기여했다.
또한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를 보존하려고 힘쓰는 등 독립 운동 유적지를 보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소심씨는 “저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라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니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국가를 위해 분투하다 희생하셨어요. 독립 운동가의 딸로서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한 일들을 계속해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1939년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소심씨.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남동생과 함께 살아야 했다.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던 그녀는 유능한 내과의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1982년, 충칭시 시의원이 된 그녀는 충칭시에 남아있는 독립 운동가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취칭장 전 인민정부 외교사업부 아시아 담당자는 "이 시기의 역사는 한국인들이 일본 침략자들에 맞서 투쟁한 역사이면서 동시에 한중 양국이 함께 힘을 보아 싸웠던 역사이기도 합니다."며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젊은이들에게 애국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교육적인 장소가 되었고 한중 양국의 외교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고 밝혔다.
■방송 : 3.4.(수) ~ 3.5(목) 오전 11시 55분 방송 (KBS 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