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기’가 이토록 핫(Hot)한 적 있었던가!
지난 1월 8일 시작해 매주 목요일 밤 KBS 2TV를 통해 방송됐던 <작정하고 본방사수>가 어제(12일) 방송으로 준비된 시즌의 파일럿 6부작을 모두 마쳤다.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그동안 그 누구도 쉽게 시도할 수 없었던 TV를 향한 돌직구를 제대로 던지면서 매회 화제를 낳았다. 혹자는 “뭐하는 프로그램이야?” “남이 TV보는걸 왜 봐야하는데?”라고도 했지만 확실한건, “정말 신선하고 용기있는 시도” “이것이 민심” “단언컨대 2015년 가장 흥미로운 방송” 등 TV비평의 새 지평을 연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1인 가구 증가와 방 마다 TV가 놓여 각자 혼자 TV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 시대, 다 같이 모여 TV를 보는 모습이 생소하기까지한(?) 조합이 던져주는 은근한 일상의 재미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새삼 주목받았던 것.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신선한 시도의 <작정하고 본방사수>가 남긴 여운을 정리해본다.
1. 속시원한 돌직구- 민심이란 이런 것!
매주 목요일 밤 <작정하고 본방사수>가 온에어되면 발빠른 프로그램 관련 리뷰기사들도 함께 나오기 시작한다. 그날 방송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무방할 각 출연자들의 장면 장면이 기사화되는데, 시청자들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댓글’의 주요 내용이자,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동안 ‘게시판’이나 ‘댓글’로만 읽고 쓰던 시청자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의견’이나 ‘생각’이 <작정하고 본방사수>의 출연진들의 입을 통해 가감없이 전파를 타고 전달되니, 이를 접한 시청자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
이 점에 있어서 미디어 비평 전문의 한 매체에서는 “기존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처럼 교수나 전문가가 등장하지 않지만 공감지수가 훨씬 높고 ‘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라고 출연자 그룹 저마다의 비평에 주목했다.
채널/장르를 불문한 성역없는 비평에 뜨거운 격려와 응원을 쏟아졌다. KBS 자사 프로그램에 대한 따끔한 비판은 기본, 타사에서 방송된 화제의 프로그램도 다루는 과감한 행보를 시도했기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인천 어린이집 교사 폭행사건이나, 세월호 사고,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 등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뉴스들에 대해 언론에서는 오롯이 다 담을 수 없었던 실제 사람들의 반응을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솔직하게 담았다. ‘진짜 민심’이 무엇인지, 얼마나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사안을 바라보는지 고스란히 전달한 것이다.
이처럼 TV를 보는 동안 함께 분노하고, 재미없으면 없다고 일갈하는 모습이나, 국가 정책이나 정치권에 거침없이 쏟아낸 날선 비판은 <작정하고 본방사수>의 파격적 도전이 선사한 통쾌한 매력이다.
2. 시청자가 주인공인 “리얼 공감”
KBS 2TV 장수건강프로 ‘비타민’에서 라면을 제대로 건강하게 먹자는 취지로 라면이 전파를 타자, 바로 다음 화면에서 <작정하고 본방사수> 출연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이러스라도 퍼진 듯 라면을 먹고있는 모습으로 웃음을 샀다.
또 <작정하고 본방사수> 첫 방송의 첫 시청 프로그램이었던 MBC ‘무한도전-토토가’에서 가수 김현정의 무대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다 돌려놔~”하는 부분에서 일제히 율동을 따라하는 모습이 차례로 화면에 비춰졌다. 누구나 TV를 보며 했을법한 리액션이 하나의 ‘공감 스토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막장과 억지가 범람하는 요즘 TV들 가운데 오랜 세월을 함께한 노부부, 사춘기 자녀를 둔 평범한 가족, 세상 둘도없는 절친 세자매, 유학생 룸메이트 등 TV 밖에서 바라만 보던 소소한 일반인들의 진짜 ‘공감’ 이야기가 TV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또하나의 진화를 이뤘다.
3. “가능성”의 발견
아무리 TV보며 느끼는 자연스럽고 솔직한 감정을 말하는 프로그램이라지만, 전달될 코멘트가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머무는게 아니라, ‘방송’을 통해 퍼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시선에 대한 부담감은 연예인이고 일반인 할 것 없이 컸을 것. 그렇다보니 사실 출연자들의 말 못할 고충도 많았다.
제작진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솔직한 비평을 그것도 방송을 통해 자유롭게 펼친다는게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에 좀 더 여유있게 바라보고, 존중하는 성숙한 시청자들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이런 시도에 대한 응원을 믿기로 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카메라 렌즈가 익숙치 않았던 일반인 출연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TV보기에 몰입해 렌즈를 의식하지 않게되고, 각 장면 장면을 접하는 순간 느끼는 즉각적 감정이나 솔직한 발언, 계산할 틈도 없이 나오는 리액션들로 자연스러움을 더해가면서 <작정하고 본방사수>의 개성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재미를 찾기 시작한 시청자들도 늘어났다.
다만 이제 막 출연자 그룹별 캐릭터가 살아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준비된 파일럿 6회 구성의 종영이 아쉬운 상황. 이제 막 탄력받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 특유의 답답함 뻥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재미를 정규 편성으로 계속 지켜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제공= KBS방송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