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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암센터가 국내 최초 암센터인 이유는? - 1969년 암센터 개원
  • 기사등록 2014-04-16 10:49:03
  • 수정 2014-04-17 00: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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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 규모를 갖춘 최초의 암센터는 연세암센터라는 주장이다.

세브란스병원측에 따르면 지난 1962년4월 국내 처음으로 자궁암 중심의 조기 암 검진센터를 개설된 이후 1969년 암센터를 개원했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이 제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에도 전문가들은 암을 전문적으로 진단, 치료하는 암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나 세브란스의 재정 능력으로 제대로 된 장비와 시설을 갖춘 암센터 건립을 추진할 수가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해외기술 원조계획(Colombo)에 따라 일본에서 1966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2개국의 암센터 건립 지원 프로그램을 세웠다.
 
일본 연수중이던 연세대 의대 교수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당시 임의선 세브란스병원장은 이 원조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일본의 원조 프로그램은 국가 대 국가 간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외무부, 경제기획원의 승인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암센터 개설을 준비해온 세브란스는 서울을 방문해 여러 대학병원을 살펴본 일본 시찰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67년 범국가적 사업 형태의 암센터 건립을 위한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이 위원회의 실무를 세브란스가 맡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사업의 주관 부처인 과학기술처는 암센터를 국립대병원에 개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사업 승인이 1년여 동안 미뤄졌다.

임의선 병원장이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만났을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지만군이 홍역에 걸렸을 때 세브란스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가 소아과 임의선 교수였다.

2주 만에 지만군은 완쾌했고, 이후 육 여사는 외국 귀빈 방문이나 어린이날 등에 세브란스병원을 수 차례 방문했다.

임의선 병원장은 육영수 여사와 환담 중에 암센터 건립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이야기를 전해들은 육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 암센터 건립은 급물살을 탔다. 박 대통령은 암센터를 조속히 건립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국가재정(해외원조)으로 암센터를 건립하되, 세브란스에 두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최초의 ‘국립 암센터’가 민간 병원인 세브란스 안에 생기게 됐고, 이것이 연세암병원의 전신인 연세암센터였다.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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